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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진짜 성격을 말해주나요? – 심리학자가 본 MBTI 열풍

by 아롱상태 2025. 4. 21.

요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혹은 연애 어플과 기업 채용 과정까지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MBTI가 뭐예요?”
이 네 글자로 사람을 분류하고, 이해하며, 때로는 평가하기까지 하는 시대.
과연 MBTI는 우리가 믿는 만큼 신뢰할 수 있는 도구일까요?

MBTI, 진짜 성격을 말해주나요? – 심리학자가 본 MBTI 열풍
MBTI, 진짜 성격을 말해주나요? – 심리학자가 본 MBTI 열풍

이번 글에서 심리학자의 시선에서 MBTI 열풍을 들여다보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실들을 함께 탐구해봅시다.

MBTI의 정체: 어디서 왔고, 무엇을 말하는가?

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개발한 성격 유형 검사입니다. 그들의 이론은 심리학자 칼 융의 심리유형론에 기반하고 있으며, 인간의 성격을 다음 네 가지 지표로 분류합니다.

외향(E) vs. 내향(I): 에너지의 방향이 바깥인가, 안쪽인가
감각(S) vs. 직관(N):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사고(T) vs. 감정(F): 판단 기준은 논리인가, 감정인가
판단(J) vs. 인식(P): 생활 방식이 계획적인가, 유동적인가

이 네 가지 척도의 조합으로 총 16가지 성격 유형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결과에 흥미를 느끼고, 마치 ‘심리적 혈액형’처럼 자신의 MBTI 유형을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하지만 MBTI는 어디까지나 자기보고식 검사입니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성격을 바탕으로 결과가 도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컨디션이나 문항 해석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흔하죠.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MBTI 검사를 5주 간격으로 두 번 시행했을 때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유형이 달라졌다는 결과도 존재합니다.

과학적인가요? – MBTI를 둘러싼 심리학계의 시선

많은 사람들이 MBTI를 심리학적 진단 도구로 오해하지만, 실제 심리학계에서는 MBTI를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분법적 분류의 문제
MBTI는 ‘외향’ 또는 ‘내향’, ‘감정형’ 또는 ‘사고형’처럼 0 아니면 1의 이분법으로 성격을 나눕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심리학 이론은 인간의 성격을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외향성과 내향성은 양 극단이 아니라, 연속적인 선상에서 어느 정도 위치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죠. 이분법적으로 나누다 보면 중간 지점에 위치한 사람들이 억지로 한 쪽으로 분류되는 오류가 발생합니다. 이는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단순화시키고, 때론 왜곡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2. 검사 신뢰도와 타당도 문제
심리검사가 과학적으로 의미 있으려면, 신뢰도(일관성)와 타당도(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하는가)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MBTI는 같은 사람이 여러 번 검사할 때 결과가 바뀌는 경우가 많아 신뢰도가 낮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또한 실제 직무 수행 능력, 대인관계, 스트레스 반응 등과의 상관관계도 낮아 타당도 역시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3. 대체 가능한 더 과학적인 성격 이론
심리학계에서 보다 널리 인정받는 성격 이론은 ‘빅 파이브’ 성격 이론입니다. 외향성, 성실성, 개방성, 친화성, 신경성의 다섯 가지 요소를 연속적인 차원에서 평가하며, 학술적으로도 타당성과 신뢰도가 높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채용, 임상, 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MBTI는 이렇게 인기 있을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MBTI에 열광하는 걸까요? 과학적 근거는 부족해도 MBTI가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유익은 분명 존재합니다.

1. 자기이해와 타인이해의 시작점
MBTI는 사람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는 자기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저 사람은 왜 나와 다를까?’라는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여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2.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역할
특히 MZ세대는 MBTI를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코드로 활용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어색함을 줄이고, 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친근한 소재가 되기 때문이죠. “너 T야? 그래서 그렇게 칼같이 말하는 거구나~” 같은 식으로 유머나 관심 표현에 쓰이기도 합니다.

3. 정체성 탐색과 자기 표현의 수단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고민합니다. MBTI는 이런 고민에 대한 하나의 틀과 언어를 제공합니다. “나는 INFP니까 이럴 수 있어”라는 식의 해석은 때론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이 지나치면 성격 유형에 스스로를 가두는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이어질 위험도 존재하지만요.

MBTI는 나침반일 뿐, 지도가 아니다

MBTI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도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과학적 진단이나 평가 기준으로 사용하기엔 많은 한계를 지닙니다.
심리학자의 시선에서 볼 때, MBTI는 ‘진짜 성격’을 말해주기보다는 ‘성격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데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
MBTI 유형은 정체성이 아니라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유연하며, 성장 가능한 존재니까요.